축구스타열전

흐리스토 보네프와 불가리아 축구

시북(허지수) 2008. 7. 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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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isto Bonev

 흐리스토 보네프. 그는 불가리아의 전설적인 선수입니다. 별로 알려진 바가 없어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자료도 찾기가 어렵지만, 눈부신 선수들만 조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소리 없이 빛났던 불가리아의 스타, 보네프 이야기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덤으로 불가리아 축구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프로필

 이름 : Hristo Bonev (혹은 Christo Bonev)
 생년월일 : 1947년 2월 3일
 신장/체중 : 179cm / 77kg
 포지션 : MF (FW?)
 국적 : 불가리아
 국가대표 : 96시합 47득점 (대표통산 득점1위)

 ① 불가리아 대표팀, 역대 최다득점자 보네프.

 불가리아의 스타라고 한다면, 역시 월드컵 득점왕에 발롱도르까지 휩쓸었던 스토이치코프 선수가 유명할 것입니다. 또한 21세기에는 베르바토프라는 걸출한 공격수도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보다 훨씬 오래전, 불가리아의 스타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흐리스토 보네프 입니다.

 보네프는 불가리아의 국가대표로 20살 때부터 발탁되어서, 12년간 주전으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공격적인 미드필더였지만, 발군의 득점감각을 겸비했기 때문에 수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통산 47득점, 이 기록은 스토이치코프도 넘어설 수 없었던 빛나는 기록이었습니다. 이제는 베르바토프 선수가 이 기록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그럼 이제 보네프의 이름은 추억의 역사 속으로 묻혀질 가능성이 크군요 (허허...) 한편, 한국의 어떤 자료에서는 보네프가 70년대 동유럽의 대표적 스트라이커로 소개된 적도 있었는데, FW와 MF를 겸비했던 걸까요. 하긴 확실히 나누기 애매하겠군요. 어쩌면 섀도 스트라이커 정도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보네프의 스타일은 영리하고, 우아했다고 전해집니다. 별명은 스마트. 한편 베르바토프 역시 우아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묘한 우연이군요. 보네프의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유명한 팀에서 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선수시절 대부분을 고향팀 로코모티브 프로브디프 (Lokomotiv Plovdiv) 팀에서 보냈습니다. 당시 불가리아 축구는 명문 CSKA 소피아팀과 레프스키 소피아, 즉 두 소피아 팀이 우승을 독식하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향팀에서 뛰었던 보네프는 우승트로피와는 거리가 멀었던 선수였습니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해외진출이 허용되어서, 그리스 AEK 아테네에서 활약하며 컵대회 우승을 따냈던 게 유일한 트로피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네프의 플레이는 대단했고, 그는 불가리아 국가대표팀의 중핵으로 활약해 나갔습니다. 불가리아 최우수선수에도 3차례나 선정되었습니다. 그의 위상이 어느정도였는지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월드컵에도 참가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70년 월드컵이었지요. 당시 불가리아 대표팀은 월드컵 첫 출장은 아니었지만, 그전까지 정말 참패만 당했던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좀 비슷하지요. 월드컵 통산 1무 5패, 2골 15실점을 자랑하던(?) 약팀이었습니다. 1승에 목말라 있었지요.

 스타 보네프가 있던 불가리아는 70년 월드컵 때는 좀 달랐습니다. 그 첫 경기는 역전 명승부로 꼽히기도 하는 경기입니다. 페루와의 경기였습니다. 불가리아는 전반에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에는 보네프의 쐐기골까지 터집니다. 이야 드디어 이렇게 1승이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2-0 으로 앞서던 불가리아. 그런데 후반에 3골을 내리 허용하면서 페루에게 장렬하게 2-3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첫 승의 꿈이 이렇게 날아갔습니다. 이 장면 예전 한국이 월드컵에서 멕시코에게 통한의 역전패 당했던 장면과 겹쳐지는군요 ㅜㅜ...

 이어 펼쳐진, 서독과의 경기에서도 불가리아는 선제골을 넣었으나, 70년대 강호 서독은 강했습니다. 5골을 헌납. 2-5로 역전 참패. 결국 조별리그탈락을 확정짓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선제골 넣었던 불가리아였지만, 또 후반에 동점골 내주면서 무승부, 끝내 단 1승도 챙기지 못하고 짐을 싸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5골이나 넣은게 어딥니까!... 여하튼 불가리아 축구는 70년 월드컵에서 참 안습이었습니다.

 74년 월드컵, 보네프 시대의 불가리아는 또 다시 본선에 이름을 내밉니다. 이번에는 1승을 거둘 것인가? 첫 경기 스웨덴과 무승부. 그리고 두 번째 경기. 우루과이전, 오늘의 주인공 보네프가 귀중한 선제골을 뽑아냈습니다. 드디어 1승을 하는가 싶었는데, 경기가 끝나기 직전인 약 5분을 남겨놓고서 동점골 허용.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1승을 날리고 맙니다.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요한 크루이프와 네스켄스가 이끌던 네덜란드에게 1-4 참패. 짐을 싸고 말았습니다. 불가리아 월드컵 4연속 본선진출, 본선에서 0승 4무 8패. 필자는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웃음)

 그렇다고 불가리아가 마냥 그렇게 약했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불가리아는 당시 아시아팀과 종종 붙었던 조금 특이한 팀이었습니다. 일본과도 경기를 해서 일본을 완파했고, 북한과도 경기를 가져서 북한을 완파했습니다. 당시 북한을 6-1로 대파했는데, 보네프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과연 스타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보네프의 국가대표 47골 중에는 북한을 상대로한 5골 정도가 최소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쓴다고 썼지만, 역시나 에피소드가 없어서 인지 그다지 재미는 없는 듯 합니다. 70년대 동유럽의 명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보네프는 이후에, 은퇴 하고나서 지도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불가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것이지요. 감독으로서도 98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당시 불가리아 대표팀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주력 선수들인 스토이치코프, 페네프 등과 마찰이 있었고, 결국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조별리그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베켄바우어는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월드컵 우승을 했지만, 보네프는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월드컵 단 1승조차 따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보네프지만 그래도 레전드의 반열에 올리고자 함은.

 당대 불가리아의 대표적 명선수로 활약하며, (몇 년 안에 베르바토프가 깬다는 가정 하에) 약 30년 동안 국가대표 최다골 기록을 보유, 그가 있었기에 두 번이나 월드컵 1승을 따낼뻔 했음, 우아한 플레이로 많은 찬사를 받았던 영리했던 선수였기에 그러합니다. 서유럽 클럽팀에서, 혹은 불가리아의 명문클럽에서 활약했더라면, 좀 더 이름을 날렸을 텐데, 만약이란 없겠지요. 그럼 여기서 불가리아의 수난사와 기적을 이야기 해야겠습니다. 2편.

 ② 프랑스 파리의 비극, 그리고 불가리아의 기적. 꿈은 이루어진다.

 1990년 월드컵까지 불가리아의 통산 월드컵 성적. 월드컵 무려 5회 출장. 0승 6무 10패.
 재미로 보는 우리나라의 1998년까지의 통산 성적. 월드컵 무려 5회 출장. 0승 4무 10패.
 예, 제가 동질감을 느끼는 까닭입니다. (웃음)
 그런데 두 팀은 나란히 6번째 월드컵 출장에서, 기적같이 승승장구 하면서 4강이라는 놀라운 신화를 쓰지요. 이건 참 신기한 인연이지요. 허허. 불가리아 4강의 전설도 정말 극적이었습니다. 그것도 예선부터 말입니다.

 1993년 월드컵 예선, 불가리아는 프랑스, 그리고 스웨덴과 한 조였습니다. 이 당시 예선에서 프랑스는 잘 나갔습니다. 8경기를 치르는 동안 6승 1무 1패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남은 경기는 두 경기였고, 승점 1점 그러니까 1무승부만 추가하면 자력으로 본선행이었습니다. 더욱이 남은 두 경기는 모두 홈경기였습니다. 누구나 프랑스의 본선행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방심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자만이 결국 프랑스를 수렁으로 몰아넣는데...

 원정에서 프랑스는 약체인 이스라엘을 4-0 으로 대파한 바 있었습니다. 홈에서 고작 이스라엘 정도(?)에게 질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대문에, 얼마나 대승을 거두며 본선행을 확정지을 지 축제 분위기 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93년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8경기 동안 승리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참 축구도 인생도 묘합니다. 맞아요. 알 수가 없습니다. 꼬마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잡은 것과 똑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프랑스가 들떠있던 방심한 분위기를 틈타, 이스라엘이 선제골을 넣어버립니다. 홈인데 당황한 프랑스는 정신을 차리고 2-1로 역전을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어차피 월드컵 본선탈락했지만 끈질겼습니다. 끝까지 따라붙어서 2-2가 되었고, 로스타임에 결승골까지 넣으며 프랑스를 잡았습니다. 프랑스는 충격의 2-3 패배를 당합니다.

 그리고 설마설마 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유럽예선 최종경기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상대는 불가리아. 불가리아는 무조건 이겨야만 본선 진출이 가능했고, 프랑스는 비기기만 해도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쪽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비기더라도 괜찮다는 방심이야 말로 정말 커다란 내부의 적이니까 말입니다.

 이스라엘전 패배의 교훈도 있고, 프랑스는 선제골을 넣습니다. 그럼 그렇지, 프랑스가 불가리아에게 밀리는게 말이 안 되지~ 라는 잠깐의 축제 분위기였으나... 잠시 후 불가리아의 골이 터지고 1-1 동점상황. 그리고 후반 로스타임, 마침내 불가리아는 역전골을 날리며, 프랑스를 침몰시킵니다. 마지막 홈 두 경기에서 승점 1점도 못 따낸 프랑스는 이렇게 예선에서 탈락해 버렸습니다. 실화치고는 정말 드라마가 따로 없는 대단한 예선실화입니다. 한국도 예전에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적이 있었지요. 월드컵의 이 각본없는 드라마가 참 좋습니다.

 이 조에서 월드컵에 진출했던, 스웨덴과 불가리아는 나란히 월드컵 4강에 성공하면서, 드라마의 정점을 찍어줍니다. 그래요, 불가능은 없습니다. 16경기 월드컵 무승을 자랑하던 불가리아가, 4강에 들 지 누가 알았습니까? 14경기 월드컵 무승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이, 4강 신화를 쓸 지 누가 알았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수십번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그가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뒤에 크나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는 당장 눈앞의 쓰라림이나 패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딛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두 편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98년 이후, 두 대회 연속 예선탈락을 했었던 불가리아는 2010년 월드컵에 다시 한 번 이름을 내밀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이제 불가리아는 주장 베르바토프가 이끄는 새로운 전성시대를 또 한 번 맞이할지도 모르겠군요. 1승을 위해서 노력했던 불가리아, 극적으로 본선에 진출해서 4강 신화를 썼던 불가리아. 다시 한 번,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마칩니다.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언제나 감사드립니다.